알프레드 히치콕의 현기증 (1958)은 단순한 살인 미스터리가 아닙니다.
실제로는 '현기증'에 관한 영화조차 아닙니다.
이 영화는 기억, 욕망, 환상이라는 심리적 소용돌이 속으로의 추락이며,
우리가 사랑에 빠지는 것은 종종 사람이 아니라 그 사람에 대한 우리의 이미지라는
섬뜩한 진실을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60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현기증은 여전히 불편하고 생생하게 느껴집니다.
왜냐하면 이 영화가 말하는 집착은 단지 영화적인 것이 아니라,
너무도 인간적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매들렌이라는 환상
스코티 퍼거슨이 매들렌을 처음 보았을 때,
그는 단지 그녀의 외모에 끌린 것이 아닙니다.
그는 그녀의 신비로움, 침묵,
그리고 그녀가 이미 유령 같은 존재라는 인상에 빠져듭니다.
그녀는 한 폭의 그림처럼 연출되어 있습니다.
우아하고, 멀고, 비극적인 인물.
스코티는 그녀가 누구인지 묻지 않습니다.
그는 단지 자신이 그녀이길 바라는 존재를 쫓을 뿐입니다.
그리고 그 쫓음 속에서, 우리는 위험한 환상이 태어나는 순간을 봅니다.
사랑이 과거를 되살릴 수 있다는 착각 말이죠.
주디: 이미지 너머의 여성
진실이 드러나죠 —
매들렌은 실제 인물이 아니었고,
그저 주디가 연기한 존재였다는 사실.
우리는 스코티가 이쯤에서 그만두기를 기대합니다.
하지만 그는 그녀를 다시 매들렌으로 되돌리려 합니다.
겉모습뿐 아니라, 그녀의 정체성마저 바꾸려 들죠.
이건 사랑이 아닙니다.
소유욕, 투사, 벌주기입니다.
그리고 주디는 조용한 절망 속에서 그를 받아들입니다.
그녀는 이렇게 믿습니다 —
"그 환상이 되어야만,
그에게 사랑받을 수 있을지도 몰라."
심리적 소용돌이로서의 ‘현기증’
이 영화의 제목은 단지 의학적 증상이 아닙니다.
은유입니다.
스코티의 현기증은 한 남자가
존재한 적 없는 현실을 붙잡으려 애쓰는 감정적 추락을 반영합니다.
소용돌이치는 계단,
불안한 음악,
중첩되는 정체성들 —
모두가 슬픔과 죄책감에 사로잡힌 정신의 회전을 상징합니다.
기억, 욕망, 환상의 삼각 구조
현기증을 움직이는 세 가지 감정의 축 —
기억, 욕망, 환상은 영화의 핵심 삼각형을 이룹니다.
기억: 과거에 대한 스코티의 슬픔과 죄책감.
욕망: 닿을 수 없는 이상에 대한 집착.
환상: 허구를 진실로 만들고자 하는 욕구.
그리고 그 삼각형 안에서,
사랑은 광기의 한 형태로 변해갑니다.
왜 이 영화는 지금도 우리를 괴롭히는가
현기증은 미스터리를 해결해서 남는 영화가 아닙니다.
오히려 의문을 남기기 때문에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묻게 됩니다.
"내가 사랑하는 그 사람은,
진짜 그 사람일까?
아니면 내가 만든 그 사람의 이미지일까?"
그 질문은 때로 너무 무섭고 불편해서,
우리는 정면으로 마주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현기증은 해답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추락으로 끝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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